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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평소에 잘 하지도 않던 SNS가 유난히 눈에 밟히는 날이었다. 손톱보다는 클까, 작은 사각형 위로 손가락을 올리면 완전히 가려지는 것이 무어 그리 무섭다고. 생각없이 버린 불씨에 내 주변이 전부 타오를 것만 같아서, 겁이 났다. 버튼을 누를 듯 손가락을 높이 들어 올리다가 멈칫, 천천히 내리면서 멈칫···. 버튼과 손가락 사이의 거리가 mm단위로 작게 줄어들었을 때조차 손가락을 부들부들 떨어가며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나참, 이게 뭐라고.
그리도 무서우면 누르지 않으면 될걸, 본능적인 두려움에 벌벌 떨면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이 나뭇가지에 걸터앉아 톱으로 자신이 앉은 가지를 자르는 이와 같았다. 무엇에 대한 두려움인지 알지 못하면서도, 눈에 이끌린다는 이유 하나로 벌벌 떨어가며 겨우 누르는 꼴이라니, 우습기도 하지. 가벼운 비소를 날리며 SNS에 접속했다. 바보같이, 몸이 보내오던 필사적인 경고를 무시하고 총구가 누구를 향하고 있는지도 확인하지 않고서 기어코 당긴 방아쇠를 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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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그리 특별한 날이 아니었다. 기념일도 아니었고, 뜻밖의 행운이나 불운이 찾아오는 일도 없는, 그냥저냥 일상이라 표현할 수 있는 수많은 날들 중 하나였다. 얼마 전 SNS에서 우연히 발견한 유명한 테이크아웃 디저트 집의 광고를 보고 주변으로 데이트 장소를 정했다던가, 너에게 깜짝 선물을 쥐어줄 준비를 했다던가의 평범이라는 단조로운 일직선에서 이벤트라는 굴곡이 발생이 하긴 했지만··· 그리 크게 신경 쓸만한 일은 아니었다. 언제나 네게 많은 것을 전해주고 싶었고, 너와 데이트를 하고 싶었으니 이 또한 일상이라 볼 수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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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으면 곤란한데.
길을 잃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리고, 당황이 잔뜩 묻어나오는 목소리로 내뱉은 첫마디였다. 여유롭게 출발하였으니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있을 것이었으나, 과거에 보았던 광고에는 분명 '한정'이라는 단어가 붙어있었다. 이대로 계속 길을 헤멘다면 깜짝 이벤트를 실패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데이트에 지각할지도 몰랐다. 작게 침음을 삼키며 혹시라도 옷이 더러워질까, 새하얀 와이셔츠를 탁탁 털자 귀에서는 검은 귀걸이가, 목에서는 평상시의 쵸커가 아닌 네가 준 연두빛의 목걸이가 작게 흔들렸다.
분명 이 근처였는데. 원망스러운 마음으로 손에 든 전단지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가, 전원이 꺼져버린 휴대폰을 의미없이 톡톡 두들기는 행동에서 초조함이 흘러나왔다. 방금까지 가득했던 사람들은 더이상 보이지 않았고, 오랫동안 방치된 것인지 더럽고 어둑한 골목길이 긴장감을 조성했다. 사람이 있어야 길을 물어볼 수 있을 텐데. 결국 계속해서 앞만 바라보고 있던 발을 돌려 뒤를 향한 순간, 한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실례합니다. 혹시 이 가게로 가는 길을 아시나요?
안도감을 가득담아 한 번, 뒤이어 긴장으로 가득 찬 웃음을 한 번 지어보이고서 운명을 결정지을 입을 힐끗 바라보았다. 만약 그가 모른다면 서둘러 왔던 길을 돌아가 푸딩을 사고 조금 늦는 것과, 사지 못하고 일찍 도착하는 것 중 차악을 골라야 하리라. 그가 고민하는 듯 입을 움찔 거릴 때 마다 심장의 박동이 거세지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수 초의 시간이 흘렀고, 그가 내뱉은 말은 다행이도 긍정의 말이었다.
아,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그가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내가 지니고 있건 전단지와 비슷한 것을 꺼내 지도를 보여주며 친절히 길을 알려주었다.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을 듣다, 그가 설명을 마친 후 전단지를 건네주자 고맙다는 듯 환히 웃어보이고는 가볍게 목례했다. 길을 아는 사람을 만나 다행이네, 살 수 있겠어. 네가 선물을 받고 놀라는 모습을 상상만 해도 입꼬리가 올라가며 푸스스하는 웃음소리가 새어나왔다. 그렇게 행복으로 상기된 볼을 신경쓰지도 않고, 지도를 보며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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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제발, 제발···! 디저트 가게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줄이 길게 늘어선 후였다. 서둘러 줄을 서고선, 잡고 있던 전단지가 구겨질 정도로 손에 힘을 주고 간절히 빌었다. 너무 늦지 않았기를. 설마 이 줄 전부가 푸딩을 사겠는가. 한 명, 한 명이 줄어들 때 마다 심장이 쿵, 쿵 거리며 제 존재감을 내보였다. 그렇게 기다리기를 수 분, 드디어 차례가 왔다.
특제 푸딩··· 남아있, 나요?
재고를 확인하는 듯 몇 번 패드를 두드리는 소리에 맞추어 동공이 수축과 이완을 반복했다. 그렇게 10분같은 10초가 흐르고, 직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의 말을 내뱉었다. 아, 성공했다! 서둘러 특제 푸딩과 같이 먹을 여러 종류의 디저트들을 주문한 후, 매장의 시계를 힐끗 바라보며 남은 시간을 계산했다. 약속까지는 20분정도 남았으니, 디저트를 받고 천천히 걸어가면 여유롭게 도착할 수 있겠어. 오늘은 운이 좋은 날이네, 잔잔한 바람에 머리카락이 살랑이는 것을 느끼며 천천히 미소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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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이 좋기는 무슨, 다신 없을 최악의 날이다. 투욱, 소중히 안고 다녔던 상자가 소리없는 단말마를 내뱉으며 추락했으나, 못에 박힌듯 시야는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고 해야 하나.
처음 그를 보았을 때는, 당신 덕에 저가 원하던 것을 살 수 있었노라며 감사의 인사를 전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입고리를 잔뜩 끌어올리고서는 한 걸음 다가간 순간, 옅은 바람에도 진하게 묻어나오는 혈향에, 그 속에서 감춰진 옅은 바다의 향이, 입꼬리를 추락시켰다.
그는 웃고 있었다. 서늘한 붉은 빛의 것을 손에 들고, 서늘한 바닥에서 고요한 잠에 들어버린 너를 바라보며, 그가 웃었다. 생존본능이라는 것은 어서 도망가라며 머릿속을 시끄럽게 울려댔고, 이성은 저 멀리 도망가버렸다. 돌아오지 않을 답을 알면서도, 허공에 네 이름을 흩뿌리며 천천히 네게로 걸음을 옮겼다. 중간에 그의 눈이 나에게로 향했지만, 보이지 않았다.
한 걸음, 한 걸음···. 향을 색으로 칠할 수 있다면, 온 세상이 붉게 물들 만큼의 혈향이 점점 진해지는 것을 느꼈다. 속에서부터 거부반응이 올라와도 꾹 참고, 이미 스러져버린 너에게로 걸음을 옮겼다. 왜 네가 누워있어? 왜 내 말에 답해주지 않아? 왜이리 창백한 거야, 왜이리 차가운 거야···. 찰박, 무릎이 땅에 닿았으나 들려온 소리는 습기가 가득했다. 점차 식어가며 딱딱해지는 네 손을 부여잡고, 제 볼에 부비며 끊임없이 네 이름을 불렀다. 눈물이 방울져 떨어지며, 붉은 웅덩이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하늘아, 눈 좀 떠봐. 하늘아, 하늘아···.
제발, 제발···. 주인에게 닿지 못한 이름은 허공으로 흩어졌고, 목적지가 사라진 감정이 날뛰었다. 왜, 어째서 이렇게 된 거지? 내가 이곳을 데이트 장소로 잡았기 때문인가? 내가 길을 잃었어서, 내가 길을 물어봐서, 내가 늦어서, 내가, 내가···. 길을 잃은 감정들이 죄책감이라는 날카로운 화살로 변해 몸 곳곳에 박혔다. 누가 너를 고통스럽게 했는가, 누가 너에게 두려움을 주었는가. 이미 알고 있는 정답에 고개를 들어 바라보았을 때, 날카로운 통증이 나를 집어삼켰다.
너의 생명 위로 나의 생명이 쏟아진다. 한 번, 두 번. 연달아 찔린 몸이 연약한 제 속살을 내보이며 아쉽지도 않은 지 울컥 울컥 붉은 물을 내뱉었다. 아, 너는 이런 고통 속에서 눈을 감았겠구나. 이보다 더한 공포 속에서, 쓸쓸히 눈을 감았겠구나. 고통이 아닌 후회의 눈물을 내뱉었다. 미안해, 잔뜩 갈라져 듣기 힘든 목소리가 공허를 맴돌았다.
미안해, 미안해 하늘아. 내가 더 일찍 왔어야 했는데. 내가 널 지켜줬어야 했는데. 내가, 내가 너를··· 이렇게 만든 거야. 미안해, 미안해···. 너를 향한 사랑을 입에 담는 것이 너무나도 죄스러워, 더이상 말을 할 수 없을 때 까지 사과를 반복했다. 점차 숨이 줄어들고, 목소리가 희미해질 때 조차도. 너를 향한 제 마음이 너무나 역겨워, 끝의 끝까지 사죄만을 담아내고서, 나또한 눈을 감았다.
미안해, 하늘아.
Happy Ending? 찢겨진 악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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