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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글

破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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破鏡 [파경] : 깨어진 거울. 부부(夫婦)의 금슬(琴瑟)이 좋지 않아 이혼(離婚)하게 되는 일.

서건이 변했다.

 

"린, 간지러워요."

좋아하던 입맞춤을 밀어내고,

 

"잠시만요, 서류가···."

서류를 핑계로 포옹을 거부했으며,

 

"일이 밀려서요. 먼저 자요, 린."

할 수 있음에도 끝내지 않은 일을 붙잡으며 동침을 피했다.

 

무엇이 그를 변하게 했을까.

아니, 이유가 있을까?

 

 

 

 

서건은 어느 날 그의 연인과 서로의 온기를 나누는 시간이 부담스럽다고 느꼈다. 그렇기에 서건은 도저히 그의 노란 눈을 똑바로 바라볼 수 없었다. 언제나 바라왔던 것임에도.

 

낮이고 밤이고 시도 때도 없이 떠오르는 하얗고 노란 것에 일이 밀리면서도 행복하게 웃었던 기억이 있다. 서건은 손에 쥐고 있던 만년필을 돌리며 생각했다. '언제부터 린을 떠올리지 않았지?' 그의 동료가 답했다. '요즘 정신 차렸나 봐, 일 속도가 빠르네.' 서건은 답했다. '앞으로도 그럴 거야.' 그는 이 말의 뜻을 떠올리지 못했다.

 

 

 

늦었네. 탁상시계를 바라본 서건이 낮게 중얼거렸다. 해가 조금이라도 아래로 기울었다 싶으면 서둘러 짐을 챙겨 집으로 떠났던 그는 이제 없었다. 아무도 없는 사무실, 시곗바늘은 어느덧 숫자 2를 가리키고 있었다. 서건은 뻐근해진 몸을 풀며 천천히 짐을 챙겼다.

 

그러고 보니 곧 50일이네. 근처에 새벽까지 하는 꽃집이 있던가···.

 

작게 흘러나온 목소리가 피로에 잠겨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 겉면에 드러난 희미한 불유쾌한 감정을 그는 눈치채지 못했을까. 서건은 몸을 일으켰다. 이윽고 달이 서서히 희미해지기 시작하는 시간, 서건은 노란 장미 한 송이를 사 들고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이 잠들어 있는 곳. 서건은 그 바로 앞에 멈추어 섰다.

 

···왜 이렇게 숨이 막히지.

 

서건은 답답함에 문고리를 잡을 수 없었다. 턱, 하고 막히는 숨을 틔우려 매고 있던 넥타이를 풀어 헤치고 셔츠의 윗단추를 풀었다. 그런데도 숨을 쉴 수 없어서, 서건은 손에 힘을 주었다. 아. 장미의 단단한 가시가 무른 손바닥을 짓눌렀다. 따끔한 고통에 서건은 서둘러 손을 놓았고, 줄기가 꺾인 노란 장미는 바닥으로 추락했다. 서건은 담담하게 그것을 바라보았다. ···볼품없네. 결국 서건은 달이 저물어갈때서야 집 문을 열 수 있었다. 사무실 쓰레기통에 쳐박힌 노란 장미가 달빛을 받고 푸르게 빛났다.

 

 

 

 

 

 

이상해.

 

그가 연인을 제대로 보지 못한지 며칠이 흘렀다. 마지막으로 나누었던 대화가 기억이 나지 않았고, 항상 귓가를 맴돌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제 연인이 그립지 않았다. 그렇기에 서건은 자신이 이상해졌음을 깨달았다. 그는 빠르게 바로잡고자 했고, 자신의 연인에게 연락했다.

 

≡ 사랑하는 린 ˚˘˚

¹ 린, 바빠요? 

¹ 오늘은 일찍 들어갈 수 있어요. 항상 늦어서 미안해요.

¹ 기다리고 있을게요. 

 

서건은 자신을 붙잡는 동료들을 뒤로하고 사무실을 나섰다. 이것이 얼마만의 제대로 된 재회인가, 서건은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이것은 필히 반가움의 증표이리라. 서건은 자신이 연인을 보고 싶어 한다는 것에 안심했다. 설령 그것이 오해일지라도, 그는 즐거웠다.

 

연인과 똑같은 향을 입고, 돌아온 연인을 꽉 껴안으며, 사랑을 속삭이겠노라 다짐했다. 서건은 집에 도착하자마자 집을 던지듯 내려놓고 후에 있을 정사를 대비하기 위해, 연인의 향을 껴입기 위해 욕실로 향했다. 샤워기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 서건의 몸을 때리고, 그의 손안에서 샴푸가 거품을 내며 향을 퍼트렸다. 서건은 문득 향이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건은 침대에 누워 자신의 연인을 기다렸다. 도르륵 굴러간 눈이 책상에 닿고, 이어 추억이 담긴 액자로 향했다. ···. 서건은 가슴에 지펴진 새카만 불씨의 이름을 정의하지 못하고 눈을 돌렸다. 시간이 지나 그의 연인이 돌아왔고, 서건은 서둘러 몸을 맞댔다. 서로의 숨이 뒤엉키고 공기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옷 안으로 파고들어 연인의 흰 살결을 지분거리는 손이 은밀한 신호를 보냈다. 이어 서로의 옷이 벗겨지고, 제 밑에서 저를 바라보는 연인의 모습은 어떠하던가. 서건은 심장의 두근거림을 느꼈다. 그제야 서건은 안심할 수 있었다. 있을 줄 알았다. 그의 이성이 속삭이기 전까지.

 

'모르는 척 연기는 그만둬.'

 

'···아니야, 난 린을 사랑해.'

 

'그럼 말해봐, 사랑한다고.'

어리석은 서건. 진실이 무서웠던 그는 자신의 이성을 무시했다. 방금 사진을 봐서 그래. 과거보단 아닐지 몰라도, 우리는 충분히 행복해. 그는 끊임없이 말을 되뇌며 자신이 옳다고 믿었다. 서건은 손을 들어 땀에 젖은 연인의 머리카락을 넘겨주며 웃었다. 붉게 달아오른 볼을 조심히 쓰다듬고, 입술에 입을 맞추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린, 나를 사랑하나요?"

 

"―――."

 

"···그렇구나."

 

이상해, 왜 말이 나오지 않지? 황급히 눈을 감아 잘게 떨리는 눈동자를 감추고, 서건은 공포에 떨었다. 자연스레 긍정의 말이 나왔던 자신의 연인처럼, 저도 제 마음을 뱉어야 하지 않던가. 산산이 부서지는 자신의 세상을 바라보는 서건의 귓가에 이성이 비웃는 소리가 들렸다. 봐, 내 말이 맞잖아. 이윽고 서건은 아무런 감정도 담지 못한 눈으로 자신의 연인을 바라보며, 작게 말을 흘렸다. ···나도요. 그가 할 수 있는 최대의 긍정이었다.

 

정사가 끝난 후 잠이 든 자신의 연인을 보았다. 부드럽게 흩어진 하얀 머리칼이 눈을 간질거렸는지 찌푸려진 미간에도, 자신은 애정을 품지 못했다. 정사의 만족감보다 피곤함이 더 크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이미 끝난 관계라던가. 그렇기에 서건은 감기려는 눈을 무시하고 무릎을 감싸 안았다.

 

이건, 이건 이상해. 이러면 안 되잖아. 난, 린을 사랑해야···.

 

서건은 비척비척 일어나 책상으로 향하며 생각했다. 자신의 연인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높은 교성은 듣기 좋았고, 열감 가득한 눈으로 저를 바라보는 시선은 짜릿했다고. 그와 동시에 서건은 인지했다. 오늘 자신의 연인과 눈을 맞춘 적이 없다는 것을. 서건의 명석한 두뇌는 한참 전에 자신의 사랑이 식었다는 정답을 도출해냈다. 그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필사적으로 회피했을 뿐이지.

 

하얗게 질린 힘없는 손이 액자를 집어 들었다. 투명한 유리 아래,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두 남자. 무엇이 그리도 좋은지 빈틈없이 손을 마주 잡고 환히 웃고 있었다. 사랑을 가득 담고 서로를 바라보는 그 눈이 너무나 부러워서, 서건은 손에 힘을 풀었다. 높은 파열음이 공간에 퍼지며 산산이 조각난 유리 조각이 바닥을 굴러 서건의 발에 박혔다. 고통을 느낄 새도 없이 그대로 쭈그려 앉은 서건이 유리 조각을 뒤지며 사진을 집어들었다. 줄기가 꺾여 버려진 노란 장미처럼, 부서진 액자는 쓰레기통으로 들어갈 터다. 그렇다면 이 추억은 어떻게 되는 거지?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거야?

 

"―――?"

 

밤꽃 특유의 향 사이로 붉고 찐득한 향이 퍼졌다. 소리 때문인가, 아니면 피의 향? 설마 작은 유리조각이 그에게로 튀었을까. 머리 위에서 의문을 담은 연인의 목소리가 울렸다. 그렇기에 서건은 제 밑에 고여가는 작은 웅덩이를 무시하고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지금껏 피해왔던, 그의 눈을 마주했다. 손에 쥔 사진처럼 애정으로 가득 찬 눈. 변한 것은 자신 뿐이었다. 서건은 붉게 젖어가는 사진을 보았다가, 연인의 눈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서건은 더이상―

 

"린."

 

―아무런 감정이 들지 않았다.

 

"내가 당신을 사랑할 수 있게 해주세요."

 

 

Fin. 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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