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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

로그지원

" 잠깐, 한 판만 더! 이번 주 용돈 전부 걸게! "

 

" 거 참, 난 죽었네 죽었어. 전부 잃었다고! "

 

" 냅둬, 알잖아. ㅇ··· 정···. "

 

" ···쯧. 양! 대신 마지막이다! "

 

" 좋아! 달려보자고! "

 

퀘퀘묵은 의류 공장 속에서 동전이 짤랑거리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한 노동자의 손에서 모습을 감춘 동전의 모습을 상상하고, 그 가벼운 짤랑거림에 숨까지 참아가며 귀를 기울였다. 지금까지의 기록은 '홀', '짝', '짝', '짝'. 짝이 연속으로 3번이나 나왔으니 이번에는 홀인가? 아니면 그것을 노린 짝? 웅성거리던 소음이 점차 잦아들고, 한 노동자가 침을 삼키는 소리와 동전이 맞부딪히는 소리만이 웅웅 울리는 기계 소리와 함께 했다. 눈을 감자 들리는 것은 오로지 동전의 소리 뿐. ···아니, 그 사이의, 대화.

 

" 냅둬, 알잖아. 양씨 사정. "

 

내 사정이 뭐 어때서? 넘쳐나지는 않았으나, 배 잡고 골골 거릴 정도로 부족하게 살지도 않았다. 물론 부담스러웠다. 어디 들어가는 돈이 한 두푼이던가. 하지만 정말 행복했다. 투덜거리며 털어놓는 말에 맞장구쳐주던 다정한 목소리와, 머리를 쓰다듬던 부드러운 손길을 기억한다. 내 가족, 내 누나···. 그렇기에 나는 쓰러지지 않아, 무너지지 않아. 그러니까 난···

 

" 홀이다! "

 

괜찮아.

 

 

 

 

" 한 짝이네. "

 

" ···예? 홀짝이요? "

 

"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양씨, 뭐 잘못 먹었수? "

 

아니, 괜찮지 않아. 이게 말이 돼? 한 순간에, 이렇게 갑자기 공장이 망하면··· 난 어떡해? 항상 귀가 멍할 정도로 웅웅거리던 소음이 사라졌다. 항상 북적이던 곳은 더러운 짐상자들이 널려있어 발 딛을 틈이 없었고, 제 앞에 놓인 것은 오늘 해야할 일지가 아니라 퇴직금이라며 던져진 돈과 의류 공장에서 미처 처리하지 못한 옷가지 한 짝이었다.

 

그렇게 나는 쫓겨났다. 터덜터덜, 목적지 없이 길을 거닐었다. 이번달 식비는 괜찮을 것 같은데, 다음달부터는 어쩌지? 밥이야 대강 먹는다고 해도, 병원비는···. 툭, 툭. 힘없이 발걸음을 옮길 때 마다 발 뒷편을 따라 진득한 감정의 덩어리가 흘러내렸다.

 

" 텔레, 비전에··· 내가 나온다···, ···. 정말 좋겠네···. 정말··· 좋겠네···."

 

웅얼웅얼, 제대로 나아가지 못한 노래가사가 힘없이 추락했다. 난 이제부터 뭘 해야 하지, 내가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까. 어렸을 적에나 흥얼거렸던 노래처럼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 전 어렸을 때 매우 가난했어요. 하지만 꿈을 포기하지 않았죠. "

 

꽉 막혀버린 고막을 비집고 전파소리가 흘러들어왔다.

 

" 그리고 저는 지금, 이 곳에 서있습니다. 여러분들 앞에서요! "

 

아, 이 얼마나 찬란한가. 멍하니 들여다본 TV화면에 한 가수가 있었다. 과거에는 빈곤하였으나, 현재는 부유하며 행복해진 가수의 모습. 순간 가수의 검은 머리가 갈색으로 변하고, 보라빛 눈이 녹색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활짝 웃으면··· 나야! 그래, 내 길을 찾았어. 난 가수가 될거야. 곧 병원비 걱정도 사라지겠지? 아, 공장에서 내가 어떻게 행동했더라. 나중에 유명해질테니까 싸인도 미리 만들어야 하나?

 

느리던 걸음걸이가 점점 빨라지더니, 이윽고 뜀박질을 하기 시작했다. 다리가 땅을 쾅쾅 내리찍을 때마다 그 충격에 짤랑이는 돈주머니는 하나의 반주가 되었고, 저가 들고 있는 상자 속 옷들이 펄럭이는 소리는 수많은 관중의 함성이 되었다. 난 될 수 있어, 난 할 수 있어. 내 노래를 모두에게 들려줄거야, 인정받을거야. 그리고 나는, 행복해질거야―!

 

 

 

 

난, 행복해질거야. 행복해져야만 하는데.

 

 

 

 

이런 작은 것조차 삼킬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해?

알려줘, 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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